글 : 유승주
그날, 그 녀석의 탈출은 조용했던 동네에 사람 소리가 들리게 해 주었다.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지만 우리가족은 그때를 추억하며 이곳에서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린다.
‘따르르르릉’
‘여보세요.’
“자기야! 그 녀석이 또 탈출했어. 나 지금 소파에 앉아있는데 걔가 또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가 사라지더니 또 다시 나타났어. 지금 우리 집 마당에 있다니깐!!”
‘그래? 어떻게 또 나왔데.’
“몰라, 어머! 쟤 좀 봐! 저 녀석이 지금 우정이 크록스 한 짝을 물고 가버렸어! 어떡해!!”
‘우선 나가지 말고 있어봐! 지난번처럼 108동에서 오시겠지.’
“좀 있으면 우정이 학교 끝날 시간인데, 어쨌든 좀 더 지켜볼게, 또 전화할게.”
‘응.’
지난주, 우정이 학교 끝날 시간이 되어서 주차장으로 나갔는데 길가에 큰 개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너무 놀라 급하게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길가가 잘 보이는 2층으로 가서 개의 움직임을 살피며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내 몸만큼 큰 개가 골목을 돌아다니자 몹시 겁에 질렸다. 2층 창문에 매달려 개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이 녀석은 탈출이 몹시 기분 좋은지 타운하우스 안의 모든 집들을 기웃거리며 아주 제대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타운하우스 밖으로 나간 걸 보자 재빨리 차를 타러 갔다. 그러고는 우정이를 데리러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왔다. 다행히 집에 도착했을 때 개는 보이지 않았고 108동 차가 일찍 와있는 걸 보니 돌아다니던 개는 108동 집의 개인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타운하우스는 가파른 언덕에 있다. 입구 정면으로 둥근 화단이 있고 화단에는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있다. 화단 주변으로 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둥글게 길이 나 있고 화단 뒤편으로는 맨 윗동까지 일자로 길이 나 있다. 그리고 그 길 좌우로 집들이 계단식으로 되어있다.
총 14개집이 있는데 우리 집은 왼쪽 제일 가운데 집이다. 우리 집 맞은편 바로 윗집에는 여자분이 혼자 살면서 큰 개를 세 마리 키우고 있는데 큰 개들을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느라 그 집엔 집 전체에 높게 담장이 쳐져있다. 담장 중간에 두루마리 화장지만한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있는데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가면 개들이 그 구멍으로 코를 내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짖어대는데 우리가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녀석들은 아직도 우릴 보면 짖어댄다.
우리 집 바로 아랫집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그리고 아랫집 맞은편에도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나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남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한 달 전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어느 날 남편이 야근을 하는 날이라 딸아이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처음으로 초인종이 울렸다.
‘띵 동’
“누구지?”
“어떤 아저씨인데?”
“아저씨?”
어두컴컴한 화면 속으로 우비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가 보였다. 누구지? 이 집에 처음으로 울린 초인종에 나도 모르게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려다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아니지. 나는 다시 모니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
“누구시죠?”
“106동입니다. 혹시 저희 집 강아지 못 보셨나요? 작고 하얀 강아지입니다.”
“못 봤는데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는 딸아이와 한참을 정지 상태로 있었다.
“아저씨 말투가 좀 특이하지 않아?”
“응, 우리나라 사람 아닌 것 같아.”
“그치? 중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그러게.”
“그나저나 하마터면 문 열어줄 뻔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갑자기 순간적인 촉이 발동하여 재빠르게 2층으로 달려갔다. 딸아이도 나를 따라왔다.
“엄마 왜 그래?”
“아니, 이상하잖아. 왜 이 비오는 밤에 강아지를 찾지? 그리고 그 집 강아지 키우는 거 못 봤는데, 다른 집도 가는지 봐야겠어.”
2층 창문으로 아래 집들을 살펴봤다. 비 오는 밤이라 밖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우비 입은 남자가 아랫집 현관문 쪽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잠시 뒤 다시 아랫집에서 나온 남자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나와 딸은 반대편 창문으로 잽싸게 뛰어갔다. 딸아이는 무슨 탐정놀이 하는 것 마냥 신이 났다. 나와 딸아이는 작은 창문에 바짝 붙어서 어둠 속에서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남자가 보인다. 남자가 우리 집 윗집 현관문 쪽으로 들어갔다. 106동 남자가 맞는 것 같다.
“휴, 다행이다. 우리 집만 온 건 아닌가 봐.”
안심하며 다시 밥을 먹으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딸아이가 한숨을 푹 쉰다.
“아쉽다, 재밌었는데.”
“이그~”
가로등도 몇 개 없어 밤이면 2층에서 저 멀리 바다에 떠있는 고깃배들의 불빛이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동네였다. 낮이면 지대가 높은 우리 집에서 아랫동네로 차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눈앞에 바다의 수평선이 내 눈높이보다 높게 보이는데 그 수평선을 사랑했다. 나는 우리가 꼭 애니메이션 벼랑위의 포뇨에서 나오는 집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상상하며 행복해 하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밤이면 개 짖어 대는 소리와 날카롭게 울어대는 고양이들의 소리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cctv하나 없는 이곳은 더 이상 나에게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길고 긴 겨울 방학 어느 날 윗집에 누가 이사를 오는 것 같다. 윗집에 사시던 노부부는 조용히 이사를 가셨나 보다. 며칠 전 새벽 곱게 차려입고 콜택시를 타고 가시는 걸 우연히 본 적 있는데 그 날 가신 거였나 보다. 우리가 이사 오던 날 아주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차 일 년 살이 중이라며 짧게 인사를 나누었고 그 이후로 가끔 외출할 때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윗집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올까? 어차피 일년살이 일테지.
.
.
.
<다음 화에 계속...>
'유작가 이야기 > 바다 그리고 럭키, 해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그리고 럭키, 해피 - 최종화 (0) | 2023.07.23 |
---|---|
바다 그리고 럭키, 해피 - 2화 (0) | 2023.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