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작가 이야기/무색무취7

무색무취 최종화 글 : 유승주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울어서 눈이 부었는지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무겁다.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들어 올린다. 상태를 쳐다봤다. 볼을 만지려다 멈춘다. “상태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상태가 떠지지 않는 눈을 열심히 뜬다. 상태가 씻으러 간 사이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한다. “아침 드세요.” 남편은 지난밤 싸운 것 때문인지 더 차갑게 나를 쳐다보고는 밥상 앞에 앉는다. “오늘 학교에 가보려고요, 어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도 좀 하고요. 같이 갈 거죠?” “당신 혼자 다녀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상태야, 오늘은 엄마랑 학교 같이 가자.” “왜요?” “선생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입학식 이후로 두 번째로 상태와 같이 학교에 간.. 2023. 7. 23.
무색무취 6화 글 : 유승주 “아이가 갑자기 그럴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아니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의 차분한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가 며칠 전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다녀왔었습니다.” “아…그랬군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기사님,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괜찮으시다면 수리비만 받고 마무리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 네. 머 그래야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수리비는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남편이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수리비 나오는 대로 청구하시는 걸로 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병원에 상황을 설명하니 검사를 받아볼 수 있도록 다른 과에 접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검사를 한.. 2023. 7. 23.
무색무취 5화 글 : 유승주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건넨다. 어젯밤 먹고 싶다고 해서 사 왔는데 시큰둥하게 요구르트를 받아서는 쪽쪽 빨아먹는다. “상태야, 엄마 학교에 전화하고 올게.” 선생님께 지난밤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상태가 퇴원하는 대로 등교시키겠다고 말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오셨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보시고 맨 마지막으로 상태를 보러 오셨다. “환자분, 좀 어때요?”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도 잘 먹고 괜찮아 보여요.” “그래요, 특별히 불편하거나 한 것도 없고요?” “네, 아직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긴 해요.” “수액을 조금 더 맞고 오후까지 좀 지켜보도록 할게요.” “네,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가시고 상태와 같이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병실 밖 복도를 걸어 다녔다. 환자.. 2023. 7. 23.
무색무취 4화 글 : 유승주 유리창 속 상태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한참 후 시끄러운 통소리가 멈추었다. 모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통에 있는 유리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점점 초조해지고 있을 때쯤 간호사가 소리쳤다.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상태야!” 유리창으로 상태가 멀뚱히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인다. 상태는 통 안에서 계속 눈을 감았다 떴다고 하며 한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휴, 감사합니다.’ 간호사들이 상태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옮겼다. 의사가 상태의 눈과 심장 소리 등을 살펴보고는 우리에게 왔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며칠간 입원해서 치료하며 지켜보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2023. 7. 23.
무색무취 3화 글 : 유승주 남편과 나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각자 맡은 동으로 말없이 흩어진다. 가져온 세탁물들을 모두 배달하고 마지막 집이다. 이 집도 세탁물을 가져다주면 늘 새로운 세탁물을 주는 집인데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눈이 와서 길이 막히나…’ 시계를 보니 7시다. 얼마 지나자 기다리던 손님이 복도에 들어선다. “어머, 저희 기다리신 거예요?” “아…아니요, 좀 전에 왔어요.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어머, 감사해요” “자, 여기요.” “네, 맡길 옷 금방 가지고 나올게요.” “네, 천천히 하셔도 돼요.” 남편은 공무원에 아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인 집이다. 상태가 초등학생인 걸 아시고는 늘 우리에게 세탁물을 맡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 2023. 7. 23.
무색무취 2화 글 : 유승주 차가운 공기들이 얼굴에 달려들어 붙는다. 얼굴 전체에 금세 얇은 얼음 막이 깔린 것처럼 차가워진다. 몸을 움츠리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쫙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지나 일부는 머리로 나머지들은 목을 타고 들어와 가슴속으로 시원하게 전해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시 걷는다. 반찬을 무얼 할지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시장 냄새와 사람들의 온기로 바짝 들어가 있던 몸의 힘이 풀어진다. 시장에 올 때마다 늘 쳐다보게 되는 고운 꽃이 수놓아져 있는 보드랍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오늘도 어김없이 쳐다보며 이불 가게를 지나간다. 생선가게를 지나 채소가게로 간다. 채소가게 앞에 반가운 .. 2023.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