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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바다 그리고 럭키, 해피

바다 그리고 럭키, 해피 - 2화

by 머지볼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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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승주

 

하루는 딸아이 겨울방학 숙제로 매일 30분 운동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옥상으로 나갔다.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롱패딩에 목도리까지 감아 눈만 겨우 내놓은 채 옥상에서 딸아이의 줄넘기 개수를 세어주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우연히 윗집 여자와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4살짜리 여자아이가 있다고 했다. 날이 너무 추워 짧게 인사를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건너편 제일 첫 집에도 남자아이가 있는 것 같던데 아직 인사는 못 나누었다.

‘싹싹, 쓱쓱, 싹싹, 쓱쓱’
이상한 반복적인 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과 블라인드를 걷자 뿌옇게 창문에 김이 서려 있다. 손으로 창문을 쓱쓱 문지르자 눈앞이 온통 하얀 세상이다.
“자기야, 일어나 봐. 밤새 눈이 많이 왔어. 우정아, 일어나 봐. 눈 왔어! 너무 예쁘다.”
남편이 몸을 일으켜 내 옆으로 와 밖을 쳐다본다. 우정이도 벌떡 일어나 내 밑으로 파고들어 와 창밖을 본다.
“많이 왔네. 차가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 맞다. 미끄러워서 못 나갈 수도 있겠네. 밖에 눈 쓰는 것 같아.”
내 말에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가 세수와 양치를 끝내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는 나갈 채비를 한다.
“눈 쓸고 올게.”
“어, 근데 뭐로 쓸게?
“대충 큰 빗자루라고 들고 나가봐야지.”
“응, 고생해.”
“엄마, 나도 나가도 돼?”
“응, 옷 따뜻하게 입고 나가.”
“야호! 신난다!”
남편과 딸아이가 눈 쓸러 간 사이 모닝커피를 타와서는 창문 앞으로 가 눈 쓰는 모습을 구경했다. 집마다 자기 집 앞을 쓸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한참 뒤 남편과 딸아이가 들어왔다.
“다 쓸었어? 이웃들이랑은 인사는 좀 나눴어?”
“아니, 그냥 눈인사만 하고 눈 쓸기 바빴지.”
“차는 나갈 수 있겠어?” 
“여기는 그렇다고 쳐도 큰길은 제설작업을 안 해주니 오늘은 재택근무해야 할 것 같아.”
“응.”

타운하우스에서 조금만 나가면 일 차선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은 버스가 다니지 않아 제설작업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면 우리는 고립이 된다. 다행히 남편이 재택이 가능하고 딸아이 학교에서도 우리 집처럼 고립되는 집들이 많으니 눈이 많이 오면 등교를 못 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것도 나름 시골 생활? 전원생활의 즐거움이라 생각이 들어서 고립도 나는 좋다. 눈이 쌓인 집 밖의 풍경은 정말이지 너무 예쁘다.
 남편 직장 때문에 급하게 오게 돼서 하루 동안 돌아본 몇 집 중에 선택된 게 이 집이다. 이집 처음 보러 온 날 거실 통창으로 보이는 나무가 가득한 마당이 참 좋았다. 다른 타운하우스들과 달리 계단식으로 되어있어 거실이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다. 물론 통창 때문에 겨울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지만…  나와 남편은 워낙 조용한 걸 좋아해서 좋았지만 우정이는 처음과 달리 친한 친구 하나 없고 가까이에 놀이터 하나 없는 이곳을 심심해하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둘째를 임신했고 우리 가족은 둘째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팝콘처럼 하얗고 예쁜 매화가 피었고 그다음으로는 연분홍색의 화사한 벚꽃이 피었다. 여기저기 길가에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예쁘게도 피던 어느 봄날 108동의 개가 탈출한 것이었다.

2층에서 우정이의 크록스를 물고 간 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탈출한 녀석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 오늘은 검은색 녀석도 탈출을 해 두 녀석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갈색 녀석은 물고 간 크록스를 자기 집 담장 앞에 놓고는 다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언덕 제일 윗집에 사는 남자가 내려오더니 개를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러자 개들이 꼬리를 치며 남자에게로 갔다. 우정이를 데리러 나가기도 해야 하고 신발도 찾아야 했기에 용기를 내서 집 밖으로 나갔다. 조심조심 개를 살피며 밖으로 나가자 인상 좋은 맨 윗집 남자가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얘네들이 탈출을 했네요?”
“그러게요, 지난번에도 봤는데. 이 개들 108동 개 맞지요?”
“네, 맞아요.”
“이 녀석들 어디로 나오는 거래요?”
“그러게요.”
그때 우리 집 윗집 여자가 딸아이와 같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는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한 이미지의 윗집 여자와 아이는 큰 개가 무섭지 않은가 보다. 다행히 큰 개들은 짖지도 않고 몸집만큼 길고 큰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이 사람 저 사람 냄새를 맡으러 다녔다. 검은색 큰 개가 나에게로 와서 내 몸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다. 임신 중이던 나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작게 소리쳤다.
“엄마야! 얘 왜 이래.”
“이 개가 냄새를 잘 맡는 개예요. 래브라도 리트리버라고 공항에서 마약탐지견 하는 녀석들이죠.”
“아, 그렇군요.”
다행히 녀석이 탐색을 끝내고 내게서 멀어졌다. 휴… 한참을 배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윗집 여자가 내 배를 쳐다본다.
“임신하셨어요?”
“네.”
“어머 축하드려요.”
축하드린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방긋 웃으며 윗집 여자를 쳐다보는데, 윗집 여자도 배가 불러있다. 내가 배를 쳐다보자 윗집 여자가 웃는다.
“저도 임신했어요.”
놀랍게도 우리 둘은 예정일이 같았다. 한참을 임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여자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를 보고 웃는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네. 이름이 뭐야?”
아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지수”
“지수! 이름도 예쁘네.”
아이는 예쁘다는 말에 아까보다 더 기분 좋게 웃어 보인다. 그때 언덕 제일 윗집에서 여자아이와 엄마가 이쪽으로 내려온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위로 향했다. 제일 윗집 여자가 반가운 표정을 하며 환하게 웃으며 내려온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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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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