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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감각장애

감각장애 최종화

by 머지볼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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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벌컥벌컥 마셨나? 이런 게 취하는 걸까? 알딸딸하다는 말을 조금 알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럽다.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내 앞으로 와 선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이 남자도 아까 그 남자처럼 몸이 좋아 보인다.
“괜찮아요? 저항도 안 하고 계속 맞고만 있던데요.”
“네? 아…네”
“맞는 거에 익숙한 거예요? 아니면 맞아야 해서 맞고 있던 거예요?”
“그게…별로 안 아파서요.”
“하하... 맷집이 좋은가 봐요. 그럼 언제 나에게 전화해요. 얼마나 맷집이 좋은지 한 번 시험 해보게. 권투 할 줄 알아요?”
“권투요? 저 싸움 같은 거 못해요.”
“싸우는 건 아니고요. 권투 경기 같은 거예요. 경기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알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 여기 두고 갈게요.”
남자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테이블에 두고는 왔던 곳으로 다시 나갔다.
종이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마시던 소주를 마셔 마셨다.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상태야! 왜 아직 안 오니?’
“이제 버스 타려고요.”
‘아직도 버스를 안 탔어?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없어요.”
‘걱정되게... 어서 버스 타고 와.’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아주머니에게 가서 돈을 내고 인사를 꾸벅하고 나왔다. 

길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봐서 고개를 돌려 유리창으로 내 모습을 봤더니 하늘색 남방 여기저기에 

빨간 피가 묻어 있다.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올 때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남방은 나한테는 안 어울리는 옷인가 보다. 터벅터벅 바닥만 보고 걸으며 버스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매표소 앞으로 가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충주 한 장 주세요.”
“저기…”
말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매표소 안을 쳐다봤다.
“괜찮으세요?”
단호박죽 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본다. 

아까 그 여자가 매표소 직원이었구나... 여자의 단호박죽 색 카디건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여기요, 잔돈.”
“감사합니다.”

집에 가자 엄마가 난리가 났다. 도대체 어쩌다가 누구한테 이렇게 맞았냐며 참 많이도 물어보셨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어서 사실대로 말했더니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서울에 올라갈 수 없으니 그런 줄 알라고 하셨다. 이런 일이 또 생길까? 나는 사실 나름 재밌기도 했다. 
 겨우겨우 엄마의 잔소리를 다 듣고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누운 채 바지 주머니에서 아까 받은 명함을 꺼냈다. 네모난 종이에 이름도 없이 전화번호만 적혀 있다. 

잘은 모르지만 명함이라는 거에는 그래도 이름은 적혀있던 것 같은데.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금방 잠이 들었다.

얼굴의 상처가 나아갈 즈음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 전보다 엄마의 잔소리를 한참을 더 듣고 나와야 했다. 그래도 다시는 혼자 보낸다고는 안 해서 참 다행이다.
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약을 받아왔다. 다시 터미널을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주머니에 있던 명함이 생각이 났다. 전화해 볼까?
갑자기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바로 집에 가자는 다짐을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여보세요.’
“저기. 지난번에 포장마차에서 저에게 명함을 주셨는데요.”
‘아! 그 맷집 좋은 청년이군요.’
“…”
‘오늘 시간 되시면 이쪽으로 오실래요? 마침 오늘 경기가 있는데.’
“경기요?”
‘하하. 와보시면 알아요. 주소 알려줄 테니 찾아오세요.’
“아, 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겨우 물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좁은 골목길을 몇 번을 돌고 돌아 주소가 적혀있는 건물을 찾아냈다. 3층짜리 건물에는 간판이 없었다. 

건물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어쩐지 조금 느낌이 좋지는 않다. 

또 늦으면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은데. 그냥 집으로 가야지 하고 몸을 돌리자 앞에 그때 그 남자가 서 있다.
“왔어요? 잘 찾아왔네요.”
이런…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들어가죠.”
남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지하 문을 열고는 나를 쳐다봤다. 에잇, 모르겠다. 

나도 계단을 내려가서 남자의 시선대로 자하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 한 가운데에 

커다란 링이 보였다. 
TV에서 권투 시합을 본 적이 있다.

얼굴에 감각이 없는 나는 항상 권투 시합을 보며 맞을 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링 위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권투시합장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한참을 서서 링을 쳐다보고 있자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름이 뭐예요?”
“이상태 에요.”
“상태…이름이 재밌네요?”
“재밌나요?”
“하하. 조금요. 격투기 좋아해요?”
“TV에서 몇 번 보긴 했어요.”
“오늘 밤에 시합이 있어요. 오늘 바로 한번 나가볼래요?“
“제가요?”
“네, 그날 보니깐 주먹을 무서워하지 않던데. 그런 깡이면 해볼 만할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누굴 때려본 적이 없어요.”
“주먹이 날아와도 무섭진 않은 거죠?”
“네.”
“그럼 잘 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을 때 주먹을 날리면 돼요.”
“그게…”
“못할 것 같아요?”
어쩌지? 엄마가 알면 난리 날 텐데. 지난번에 엄마가 한 번만 더 얼굴에 피를 내고 오면 다시는 서울에 혼자 

안 보낸다고 했는데, 그래 그냥 집에 가자.
“지난번에 포장마차에서 맞고 들어가서 엄마한테…”
하고 말을 하자 지난번 포장마차에서 그 남자에게 세게 맞았을 때 느꼈던 묘한 느낌과 그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그 여자아이 얼굴 다시 보고 싶은데.
“그럼, 집에는 몇 시에 갈 수 있을까요?”
“하하. 집이 어딘데요?”
“충주요.”
“멀리서 왔네요. 막차 전에는 갈 수 있을 거예요.”
“네…”
“곧 사람들이 들어올 거예요. 사무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남자는 나를 안쪽에 있는 사무실로 데려갔다. 나를 사무실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문을 닫았다. 

사무실 안에는 가운데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의자가 있고 왼쪽에 책장과 테이블이 있고 창가 쪽으로 간의 침대가 있었다.

 테이블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와 먹다 남은 커피와 음료수들이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다행히 아직 엄마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남자의 말대로 사무실 밖으로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몇십 분 만에 금세 지하실 안이 사람들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밖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는 나는 사무실 안에서 귀만 쫑긋 새운 채 TV에서 봤던 권투경기를 떠올려보았다. 

심장이 조금 빨라지는 것 같다. 

‘철컥’
문이 열리고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남자가 들어왔다.
“나갈까요?”
벌떡 일어나 남자를 쳐다봤다. 긴장된 표정을 하고 서 있자 남자는 웃으며 나오라는 손짓했다.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 나가자 남자가 내 어깨를 툭 툭 쳤다.
“잘 보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때리는 거예요.”  

링 한 가운데서 한 남자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첫 경기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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