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유승주
문을 닫고 나오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소리지? 여자친구? 내가 일한다고? 이상한 기분에 한참을 문 앞을 막고 서있는 줄도 몰랐다. 간호사가 날 한참을 쳐다봤나 보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아…네.”
엄마가 보는 TV 드라마에서 남자,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손을 잡고 하는 걸 본 적은 많은데 내가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한참을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남자 여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와, 손잡고 가는 사람들이 많잖아!
갑자기 배가 고프다. 식당들을 열심히 쳐다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다가 한 가게의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이런 날 누가 좋아해 주겠어. 유리문에 내 모습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뒤로 마네킹에 걸려있는 옷이 보인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청바지에 하늘색 남방을 쳐다봤다. 그 옆으로 내 모습을 봤다. 내 모습과 마네킹의 옷을 번갈아 가며 봤다. 나도 저렇게 입으면 여자 친구가 생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내 손이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쩔 줄 몰라 문 앞에 서 있었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아… 이 앞에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거요.”
“아, 그거요? 입어보시겠어요?”
“그래도 돼요?”
직원이 잠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쳐다본다.
“그럼요, 잠시만요. 사이즈가 손님에게 딱 맞을 것 같아요. 바로 꺼내드릴게요.”
직원이 마네킹으로 가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꺼내 와서 건넨다.
“안에 들어가서 입고 나오시면 돼요.”
“어디요?”
“아, 저 거울 뒤로 들어가시면 돼요.”
“아, 네.”
이런 곳에 들어와 옷을 입어 보는 게 처음이라 어쩔 줄 모르겠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해본다. 옷 가게 안에 이렇게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 줄 몰랐다. 옷을 벗을 때마다 자꾸 팔을 벽에 부딪쳤다. 좁은 방 안에서 겨우겨우 옷을 입고 나왔다. 문을 닫자 문을 가득 채운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이게 나라고?? 처음 보는 어색한 내 모습에 놀라 얼어버린 내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직원이 웃는다.
“이런 스타일 처음 입어 보시나 봐요.”
“네.”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라 이 옷은 딱 손님 옷이네요, 그냥 이대로 입고 가세요. 진짜 잘 어울리세요.”
“이대로 입고 가라고요?”
“네!”
“아…”
계속 거울 속 내 모습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직원이 또 웃으며 말한다.
“마음에 무척 들어 하시는 것 같으니까 천 원 깎아 드릴게요. 진짜 많이 깎아 드린 거예요. 더는 안 돼요.”
“그럼 얼마인데요?”
“에잇, 잘 어울리시니깐 천원 더 깎아서 삼만 팔천 원만 주세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았다. 서울 올 때마다 엄마가 만 원씩 주셨는데 그때마다 돈이 남았었다.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세어보니 육만 원이다. 사만 원을 꺼내서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이 거스름돈과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봉투에 잘 접어 담아주었다. 가게를 걸어 나오는데 걸을 때마다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남방이라는 걸 처음 입어보는 것 같다.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길을 걸으며 계속해서 가게유리로 비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유리 벽 속 내가 웃고 있다. 아, 길거리에서 웃으면 안 되는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대로 집에 가기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모습으로 이리저리 사람들 틈을 걷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몇몇 여자들은 나를 쳐다보는 것도 같았다. 착각이겠지?
‘띠리리리링’
“아 깜짝이야!”
또 엄마 전화다.
“여보세요.”
‘상태야, 병원에서 잘하고 왔어? 약도 받아왔고?’
이런…약을 안 받아왔다.
“네.”
거짓말을 해버렸다.
‘바로 버스 타고 조심히 내려와야 해. 알았지?’
“저기, 엄마.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오늘은 저녁도 먹고 들어가 볼게요.”
‘그래? 혼자 밥 먹는 거 할 수 있겠어?’
“네.”
‘그래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알았지?‘
“네.”
전화를 끊고는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들어갈 때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또 웃고 말았다. 이런. 자꾸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서둘러 약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꼬르륵’
배가 너무 고프다. 병원에서 조금 걷다 보니 포장마차가 보인다. 우동이라도 대충 먹자. 포장마차는 이제 막 문을 연 것 같았다.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뭐 드릴까요?”
아주머니가 오셔서 테이블을 닦으시고는 나를 쳐다보며 물으셨다.
“우동 하나 주세요.”
“네.
갑자기 술 한 잔을 마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소주도 한 병 주세요.”
“네.”
아버지 농사일을 도울 때 아버지가 막걸리를 주셔서 받아먹었는데, 술이 센지 별로 취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아버지께서 가끔 술을 주셨다. 일이 바쁜 때에는 온종일 밭에 있기도 한데 아버지는 중간에 새참을 먹으며 마시는 막걸리가 있어 그나마 온종일 밭에 붙어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주인이 소주를 가져다주셨다. 우동이 나오기 전 소주를 한잔 마셨다.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다.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말. 일을 할 수 있다는 말.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어서 오세요.”
주인아주머니의 소리에 앞을 보니 남색 정장을 입은 덩치가 좋은 남자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머리가 긴 여자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저기 자리를 살피더니 내 옆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은 의자에 앉자마자 손을 꼭 잡고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여자가 웃는다. 남자가 여자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 여자가 고민하더니 우동을 먹겠다고 한다. 남자가 우동과 오돌뼈와 소주를 시킨다. 둘이 뭐가 좋은지 계속 웃는다.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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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