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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16

무색무취 4화 글 : 유승주 유리창 속 상태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한참 후 시끄러운 통소리가 멈추었다. 모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통에 있는 유리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점점 초조해지고 있을 때쯤 간호사가 소리쳤다.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상태야!” 유리창으로 상태가 멀뚱히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인다. 상태는 통 안에서 계속 눈을 감았다 떴다고 하며 한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휴, 감사합니다.’ 간호사들이 상태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옮겼다. 의사가 상태의 눈과 심장 소리 등을 살펴보고는 우리에게 왔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며칠간 입원해서 치료하며 지켜보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2023. 7. 23.
무색무취 3화 글 : 유승주 남편과 나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각자 맡은 동으로 말없이 흩어진다. 가져온 세탁물들을 모두 배달하고 마지막 집이다. 이 집도 세탁물을 가져다주면 늘 새로운 세탁물을 주는 집인데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눈이 와서 길이 막히나…’ 시계를 보니 7시다. 얼마 지나자 기다리던 손님이 복도에 들어선다. “어머, 저희 기다리신 거예요?” “아…아니요, 좀 전에 왔어요.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어머, 감사해요” “자, 여기요.” “네, 맡길 옷 금방 가지고 나올게요.” “네, 천천히 하셔도 돼요.” 남편은 공무원에 아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인 집이다. 상태가 초등학생인 걸 아시고는 늘 우리에게 세탁물을 맡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 2023. 7. 23.
무색무취 2화 글 : 유승주 차가운 공기들이 얼굴에 달려들어 붙는다. 얼굴 전체에 금세 얇은 얼음 막이 깔린 것처럼 차가워진다. 몸을 움츠리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쫙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지나 일부는 머리로 나머지들은 목을 타고 들어와 가슴속으로 시원하게 전해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시 걷는다. 반찬을 무얼 할지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시장 냄새와 사람들의 온기로 바짝 들어가 있던 몸의 힘이 풀어진다. 시장에 올 때마다 늘 쳐다보게 되는 고운 꽃이 수놓아져 있는 보드랍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오늘도 어김없이 쳐다보며 이불 가게를 지나간다. 생선가게를 지나 채소가게로 간다. 채소가게 앞에 반가운 .. 2023. 7. 23.
무색무취 1화 글 : 유승주 “무슨 소리야. 시골에 왜 가?” 남편이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는 문을 세게 열며 소리친다. 남편의 큰 목소리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남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려고 애썼다. “여보, 벌써 일주일 만에 두 번째에요. 그냥 사고가 아니라 애가 이렇게 피를 흘리고 오잖아요!” “그렇다고 시골에 가자고?” “조용한 시골에 가면 남한테 피해주는 일은 덜 할 거 아니에요!” 남편이 한숨을 푹 쉬고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시골에 가서 뭐 먹고 살려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소리치는 남편의 큰 소리에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가서 찾아보면 되죠, 우리 여태껏 안 해본 고생이 없는데 어디서든 못 살겠어요?” 나는 지금 상태 걱정.. 2023.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