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작가 이야기/무색무취

무색무취 3화

by 머지볼 2023. 7. 23.
반응형

글 :  유승주

 

남편과 나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각자 맡은 동으로 말없이 흩어진다.
가져온 세탁물들을 모두 배달하고 마지막 집이다.
이 집도 세탁물을 가져다주면 늘 새로운 세탁물을 주는 집인데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눈이 와서 길이 막히나…’
시계를 보니 7시다.
얼마 지나자 기다리던 손님이 복도에 들어선다.
“어머, 저희 기다리신 거예요?”
“아…아니요, 좀 전에 왔어요.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어머, 감사해요”
“자, 여기요.”
“네, 맡길 옷 금방 가지고 나올게요.”
“네, 천천히 하셔도 돼요.”
남편은 공무원에 아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인 집이다. 상태가 초등학생인 걸 아시고는 늘 우리에게 세탁물을 맡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네. 눈 오는데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파트 입구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남편 쪽으로 걸어간다.
“303호 집이 늦게 와서 기다렸다 오느라 늦었네요.”
남편이 내 손에 있던 세탁물을 받아서 든다. 눈이 아까보다 더 많이 내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좁은 골목길 가로등 불이 아까보다 더 힘껏 우리를 비춰주고 있다. 남편과 나의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골목길을 지나 큰길로 나오니 사람들 소리와 차 소리에 움츠렸던 몸을 조금 피고 걸으며 집으로 들어간다.

‘딸랑딸랑 ’

“으~ 춥다.” 몸에 남아있던 추위를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상태가 쓰러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밥상이 엎어져 있고 밥상 위에 있던 밥과 반찬들이 바닥 여기저기 퍼져있다.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상태야!”
상태의 몸을 돌려 얼굴을 보니 입 주변에 하얀 게 묻어있다. 
“상태야! 상태야!”
상태의 몸을 세게 흔들었다. 계속해서 상태를 흔들고 볼을 때려보아도 반응이 없다. 
“여보! 여보!”
세탁소까지 들리도록 크게 소리를 쳤다.
남편이 급히 뛰어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상태가 기절해있어요. 이거 혹시 연탄가스 마신 걸까요? 어떻게 해 여보!”
“상태야! 상태야!”
남편이 상태의 볼을 때려보지만 눈을 뜨질 않는다.
“그 저기 119에 신고해요.”
“119? 어, 그래.”
“119죠, 아이가 연탄가스를 마셨어요. 아니요, 눈도 못 뜨고 있습니다. 네. 여기 봉천동, 성실 세탁소입니다. 네, 네, 아네... 그럴게요”
남편이 전화를 끊고 급히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연다.
“금방 올 거래”
“여보, 수건에 물 좀 묻혀와 봐요.”
남편이 부엌으로 나가 수건에 물을 묻혀와 내게 주자 물에 젖은 수건으로 상태의 얼굴과 목을 계속 닦아주었다.
“상태야, 제발 눈 좀 떠봐라. 상태야”
흐르는 눈물 때문에 상태가 자꾸 보이지 않아 눈물을 닦으며 아이를 흔들고 또 흔들었다.
제발 눈만 떠라. 제발 눈만 떠라. 
그때 아이가 희미하게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상태야!”
상태를 흔들던 손을 멈추고 상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상태가 다시 눈을 감으려 한다.
“잠들면 안 된다! 눈 떠라 상태야!”
아이에게 계속 물수건을 대어주고 볼을 쳐가며 눈을 뜨게 했다.
옆에서 남편도 계속 상태를 불러댔다.
“상태야! 정신 차려봐!”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애 손이랑 발이랑 좀 주물러봐요.”
남편이 서둘러 상태의 손과 발을 주무른다.

‘삐삐뽀뽀’
밖에서 구급차 소리가 들린다.
“왔나 봐요!”
남편이 급히 뛰쳐나간다.
“여깁니다, 여기”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구급 대원들이 들어왔다.
구급 대원이 아이의 상태를 보고는 바로 상태를 업어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 대원에게 업혀 가는 상태의 몸이 축 늘어져 있다. 
“아이가 가스에 노출된 시간이 몇 시일까요?”
“그러니까 저희가 저녁밥 먹기 전에 6시 정도에 연탄을 피웠어요.”
“아이가 쓰러져있는 걸 발견하신 시간은요?”
“마지막 세탁물 받은 시간이 7시 좀 넘어서예요. 그리고 집에 와보니 애가 쓰러져있었어요”
“큰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제발 아들만 살려주세요.”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기도했다.
‘엄마, 상태 살려줘, 무조건 상태 살려줘. 엄마, 듣고 있지? 상태 잘 못 되면 나 안돼. 그러니깐 엄마가 상태 살려줘.’
“상태야, 눈 떠봐. 상태야 금방 병원에 갈 거야. 좀만 버텨. 좀만 참아 상태야.”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다. 떨리는 손으로 상태의 손을 꽉 쥐고는 계속해서 울며 기도했다.
아이가 잘 못 되면 어떻게 하지? 남편만 보내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겠다고 굳이 왜 나갔을까? 그 시간에 상태 숙제나 좀 봐줄걸. 이 인간 뭐가 이쁘다고 날 춥다고 같이 나갔을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흔들거리는 구급차와 크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아이가 잘 못 될까 하는 두려움과 빠르게 뛰는 심장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침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바짝 차리자. 나까지 정신 못 차리며 안된다. 무조건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누워있는 상태를 바라보며 굳게 다짐했다.

정신없이 달리던 구급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구급 대원들이 빠르게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나와 남편도 서둘러 그들을 따라갔다. 상태를 태운 침대를 이동하면서 의사가 말했다.
“바로 고압 산소치료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고는 상태를 치료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는 밖에서 상태를 지켜봤다. 의사는 상태를 이상한 하얀 통 안으로 넣었다. 유리창으로 상태의 얼굴이 보이고 통 안에서 치료가 시작됐다. 의사가 나왔다.
“가스중독으로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되었을 거예요. 고압 산소를 공급해 최대한 뇌가 빨리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치료입니다.”
“네, 선생님. 제발 우리 상태 살려만 주세요”

 

.

.

.

<다음 화에 계속...>

반응형

'유작가 이야기 > 무색무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색무취 6화  (0) 2023.07.23
무색무취 5화  (0) 2023.07.23
무색무취 4화  (0) 2023.07.23
무색무취 2화  (0) 2023.07.23
무색무취 1화  (0) 202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