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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무색무취

무색무취 1화

by 머지볼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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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승주

 

 

“무슨 소리야. 시골에 왜 가?”
남편이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는 문을 세게 열며 소리친다. 남편의 큰 목소리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남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려고 애썼다.
“여보, 벌써 일주일 만에 두 번째에요. 그냥 사고가 아니라 애가 이렇게 피를 흘리고 오잖아요!”
“그렇다고 시골에 가자고?”
“조용한 시골에 가면 남한테 피해주는 일은 덜 할 거 아니에요!”
남편이 한숨을 푹 쉬고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시골에 가서 뭐 먹고 살려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소리치는 남편의 큰 소리에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가서 찾아보면 되죠, 우리 여태껏 안 해본 고생이 없는데 어디서든 못 살겠어요?”
나는 지금 상태 걱정뿐인데, 남편은 먹고살 걱정이 우선인가 보다.
“내가 이걸 어떻게 자리 잡았는데!!”
남편이 포효하듯 내뱉는다. 남편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큰 소리에 몹시 당황했지만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잘 알아요. 누구보다 잘 알지요.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애가 이렇게 됐는데. 우리 아들 생각보다 심각할지도 몰라요. 만약 찻길로 뛰어들어서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나는 상태 없이는 못 살아요. 제발요, 병원에서 약 타다가 먹이면서 우리 안전한 곳에서 살아요, 네?”
나도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인 눈물이 순식간에 내 볼을 타고 턱 밑으로 내려왔다. 내 눈물에 남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더욱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친다.
“그러니깐, 뭐 먹고 사냐고!”
내가 생계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하지 않는 한심한 여자로 생각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아들의 안전보다 먹고 살 걱정만 하는 남편이 나도 미치게 한심한데 말이다. 눈을 부릅뜨고 나도 남편을 실망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소리쳤다.
“뭐라도 찾으면 되죠. 농사짓고 살아도 되고요. 우선 상태가 안전한 곳부터 찾고 그다음 먹고 살 걱정을 해도 되지 않아요?”
남편이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럼 학교는?”
참나... 이 남자 원래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우리 상태 받아줄 수 있는 학교 하나 없겠어요? 도시는 이제 우리가 살 곳이 못 돼요.”
이제 도시는 우리 가족이 살 곳이 못 된다는 말을 내뱉고 참 슬펐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버티며 살았던 우리인데. 나는 그렇게 매일 똑같아서 지루해했던 이곳에서의 생활을 더는 할 수 없게 되는 건가?“

한 달 전 그 사건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날을 떠올리자 후회와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여보, 아침 드세요. 상태야, 세수하고 와. 아침 먹자!”
잠이 덜 깬 상태가 방에서 나와 슬리퍼를 신고 부엌을 지나 터벅터벅 밖으로 걸어 나간다. 상태가 나가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과 밥과 반찬이 올려진 밥상을 들고 방으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찰그랑’ 방바닥에 밥상을 내려놓자 숟가락과 젓가락이 밥상 위에서 요란스럽게 부딪힌다. ‘턱. 턱.’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그”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온 남편이 몸을 구부려 내가 던지듯 벗어버린 슬리퍼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그러고는 몸을 펴서 곧은 자세로 슬리퍼에서 가지런히 두 발을 빼고 방으로 들어온다. 곧이어 차가운 물에 세수해서 하얀 얼굴이 더 하얘진 상태가 뒤따라 들어온다. 얼굴이 차가워 못 참겠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추운 겨울마다 밖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게 항상 불만인 아들이다.
“늦겠다. 어서 먹어.”
“후~후~ 쓰읍.”
“준비물은 잘 챙겼어?”
“오늘 준비물 없어요.”
“학교 끝나고 오락실 가지 말고 바로 집에 와.”
“네.”
요즘 들어 상태가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남편은 말이라고는 자기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라 그나마 물으면 대답은 잘하는 상태에게 이것저것 자주 물어보며 그것도 대화라고 하며 살고 있는데 요즘 조금 컸다고 묻는 말에 대답이 짧다. 대여섯 숟가락에 끝나는 두 남자의 아침 식사가 끝났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도시락과 실내화 가방을 들고 맨손으로 나가는 상태를 발견한다.
“목도리랑 장갑 끼고 나가.”
“답답해요.”

식사를 끝낸 남편이 방을 나간다. 혼자 남아 먹던 밥을 마저 먹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한다. ‘쏴아’ 차가운 물이 손에 닿자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진다. 기껏 따스운 밥 먹으며 속을 데워놨는데 다시 몸속까지 추위가 가득 찬다.
설거지를 마치고 마당을 지나 세탁소로 들어가 보니 남편이 인상을 쓰며 어젯밤에 받아온 세탁물을 확인하고 있다. 꼭 저리 인상을 써야 하나…
남편은 세탁 일이 정말 천직인 듯싶다. 지독히도 깔끔한 성격인 사람이 말끔히 세탁된 옷들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옆에서 지켜보면 받아온 세탁물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분류하고 깨끗이 세탁하고 정성껏 다리는 그 모든 움직임이 숨 막힐 정도로 정확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는 기계적인 움직임이다. 그 옆에 온종일 있자니 숨이 막혀 라디오라도 틀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럽다고 하는 남자다.
그래도 오늘도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흘러나온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차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오늘따라 노래 가사가 가슴에 꽂힌다. 정말이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뒤통수가 따가워 노래를 멈추고 시계를 본다. 괜히 무안해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는다. 거울을 보고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매만진다. 봄엔 파마를 좀 해볼까? 목도리도 두르고 장갑을 끼고 장을 보러 시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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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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