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유승주
차가운 공기들이 얼굴에 달려들어 붙는다. 얼굴 전체에 금세 얇은 얼음 막이 깔린 것처럼 차가워진다. 몸을 움츠리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쫙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지나 일부는 머리로 나머지들은 목을 타고 들어와 가슴속으로 시원하게 전해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시 걷는다. 반찬을 무얼 할지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시장 냄새와 사람들의 온기로 바짝 들어가 있던 몸의 힘이 풀어진다. 시장에 올 때마다 늘 쳐다보게 되는 고운 꽃이 수놓아져 있는 보드랍고 포근해 보이는 이불을 오늘도 어김없이 쳐다보며 이불 가게를 지나간다. 생선가게를 지나 채소가게로 간다. 채소가게 앞에 반가운 냉기가 나와 있다.
“어머, 냉이가 나왔네요.”
“네, 이제 추위도 곧 끝나려나 봐요.”
늘 웃는 모습으로 반겨주는 채소가게 아주머니의 따뜻한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본다.
“두부랑 콩나물 주세요.”
“찌개 끓여 먹을 건가 봐요.”
“네, 김치찌개 끓이려고요. 며칠 된장찌개만 먹었더니 칼칼한 게 먹고 싶어서요.”
“아이고, 맛나겠어요.”
주머니에서 삼백원을 꺼내어 건넨다.
“여기요”
돈을 받으며 건네시는 미소에 기분이 좋아진다.
“추운데 조심히 들어가요”
“네, 안녕히 계세요.”
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슈퍼로 들어가 상태가 좋아하는 어묵과 소시지를 사 들고 나온다. 다시 집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간다.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뻥튀기 과자를 하나 집어 든다.
“이거 하나 주세요.”
‘바스락바스락’ 걸을 때마다 뻥튀기 과자 봉지 소리가 요란하다.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가 멀어진다.
“으~~~추워” 몸을 떨며 들어가는 나를 남편이 힐끔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하던 일을 한다. 익숙한 세탁소 냄새를 맡으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가스 불을 켜고는 봉지에서 두부를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어 두부도 냄비에 넣는다. 같이 사 온 콩나물을 꺼내어 물에 담가놓고 다른 냄비를 꺼내어 물을 부어 가스 불에 올려놓고 불을 켠다. 콩나물을 삶아 재빨리 찬물에 헹군 뒤 양념을 만들어 조물조물 무친다.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는다. 금세 시쿰한 김치찌개 냄새가 가득 찬다.
“점심 드세요.”
남편이 한참 후에 방 안으로 들어온다. 하던 일을 다 마무리해야 들어오는 사람이다.
밥을 먹다 말고 정적을 참지 못하고 또 입을 뗀다.
“요즘 상태가 부쩍 말수가 줄었어요.”
“사내자식이 다 그러지 뭐”
“시장에 갔더니 냉이가 나왔더라고요. 겨울도 이제 끝나가나 봐요.”
대답을 바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남편은 내 말에 답할 수 있을 때만 하는데 이런 일상적인 얘기에는 거의 답이 없는 편이다. 늘 남편 마음에 들지 못할까 눈치를 보는 게 싫어서 뭐라도 배워야지 하고 수선 일을 배웠다. 그나마 수선 일을 하며 조금이라도 가게에 도움이 되자 나도 좀 덜 눈치를 보고 남편도 덜 까칠 게 구는 것도 같다.
그렇게 살아온 게 벌써 13년이다. 이제 좀 살만하니 이렇게 투정만 느는 게 사람인가 싶다.
다 먹은 점심상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나가서 수선 일을 시작한다. 요즘은 수선 일이 많지는 않다. 오늘은 바지 수선 하나와 담뱃불에 그을려 구멍이 난 점퍼 수선이 있어 일을 시작한다. 라디오를 튼다. 나도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한 성격이라 수선 일이 제법 잘 맞고 꽤 잘하는 편이다. 한 번 수선을 맡긴 손님은 꼭 다시 나에게 오곤 한다. 그럴 때 참 기분이 좋다. 수선을 마치고 시계를 본다. 학교 수업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상태가 집에 안 온다.
‘이 녀석 오락실 가지 말라니까’
‘딸랑딸랑’
“바지 수선 다 됐죠?”
“아, 네. 다 됐어요.”
손님이 수선된 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는 나쁘지 않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인다.
“얼마예요?”
“사백 원이에요”
“여기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딸랑딸랑’
칙칙. 탁탁. 쓱쓱. 탁탁. 쓱쓱
남편이 세탁물을 다릴 동안 부엌으로 가서 저녁에 먹을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그러고는 세탁소로 나와서 남편과 같이 저녁 배달 나갈 세탁물들을 챙긴다.
동네에 몇 년 전부터 아파트들이 하나둘 생겨 새로 생긴 아파트에 부부가 같이 일을 나가는 집들이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손님이다.
퇴근 후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시간에 맞추어 저녁 배달을 나간다.
‘딸랑딸랑’
상태가 집에 들어왔다.
“너 엄마가 오락실 가지 말라고 했지.”
“오락실이 집보다 따뜻하잖아요.”
“이그~~~기다려 연탄 피울 테니깐.”
연탄을 피우고 저녁밥을 차린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밥을 먹고 아직 밥을 다 먹지 않은 상태를 두고 몸을 일으킨다.
“밥 다 먹고 숙제부터 하고 놀아.”
“네.”
겉옷을 챙겨 입는다. 목도리도 두르고 장갑도 낀다.
“갔다 올게.”
“네.”
‘딸랑딸랑’
세탁물을 들고 집 밖을 나선다. 문을 열자 눈이 조금씩 내린다. 잠시 멈춰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고 찬찬히 떨어지는 하얀 눈을 쳐다본다.
“눈이 오네요.”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
“조금 오다 말겠지.”
“올겨울에는 눈이 자주도 내리네요.”
남편은 대답 대신 서둘러 걷기 시작한다. 나도 따라 걷는다.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조용하고 성실한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깐깐하고 말 수 없는 남편은 살아보니 참 재미가 없다. 저리 깔끔하고 꼼꼼하니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성에 안 차겠지. 내가 하는 것들을 썩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고 나도 나대로 너무 깔끔을 떠는 당신이 못마땅하다고 한 소리 하고 싶지만 세탁소 일을 하다 보니 대놓고 싸울 수도 없다. 그래도 누구처럼 술 마시고 여자 만나 속 썩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참고 살지만 가끔은 차라리 술 마시고 여자 만나는 남자가 더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동네 철물점 남편은 매일 술을 퍼마시고 와서 와이프가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해대지만 그래도 그 집은 남편이 말이 많아 시장 가다 철물점을 지나다 보면 늘 이런저런 말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가끔은 아저씨가 사람 좋게 크게 웃으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부럽기도 하다.
남편과 눈 오는 길을 걸으며 다른 집 남편이나 부러워하는 내가 우스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잠시 바라보고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다시 눈 오는 길을 조용히 걷는다.
그러다 세탁물이 젖을까 걱정되어 세탁물을 한번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빨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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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