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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무색무취

무색무취 최종화

by 머지볼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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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승주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울어서 눈이 부었는지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무겁다.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들어 올린다. 상태를 쳐다봤다. 볼을 만지려다 멈춘다.
“상태야 일어나, 학교 가야지.”
상태가 떠지지 않는 눈을 열심히 뜬다.
상태가 씻으러 간 사이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한다.
“아침 드세요.”
남편은 지난밤 싸운 것 때문인지 더 차갑게 나를 쳐다보고는 밥상 앞에 앉는다.
“오늘 학교에 가보려고요, 어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도 좀 하고요. 같이 갈 거죠?”
“당신 혼자 다녀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상태야, 오늘은 엄마랑 학교 같이 가자.”
“왜요?”
“선생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입학식 이후로 두 번째로 상태와 같이 학교에 간다. 여기저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웃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해맑았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 상태도 저 아이들처럼 평범했는데, 이젠 아닌 건가?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상태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러면 안 되지. 상태를 교실로 올려보내고는 교무실로 가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담임선생님께 상태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도 상태를 잘 살펴봐 주시겠다고 했다. 죄지은 것처럼 상태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 나왔다.
겨울이 참 길다. 이젠 봄이 와도 추울 것 같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상태를 학교 보내고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랬다. 빨라지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방문을 열었다. 전화를 받기 전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태 군 집이지요?”
“네, 그런데요.”
“여기 학교입니다. 상태 군이 아침 등교 시간에 3층 계단에서 엎어져서 얼굴에 피를 흘리고는 내려갔다고 하는데, 교실에도 들어오질 않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태 혹시 집으로 갔나요?”
“아니요, 집에 안 왔어요.”
“아이고, 어딜 갔을까요? 저희도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신고부터 하시지요.”
“아…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전화를 끊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슨 전화야?”
“상태가 학교 계단에서 엎어져서 얼굴에 피를 흘리고는 나가서 교실로 안 들어왔데요. 저는 상태 찾으러 오락실로 가볼게요, 당신이 신고 좀 해줘요.”
“뭐라고? 알았어.”
제발 오락실에 있어라. 제발 오락실에 있어라. 온 힘을 다해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속도를 멈추지 않고 뛰어갔다.
오락실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거칠게 문을 열었다. 어둡고 텅 빈 오락실 구석에 상태의 모습이 보인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상태야!”
불러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오락실 기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상태야, 수업 들을 시간에 왜 여기에 와있어!”
상태 옆에 서자 그제야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기계로 눈을 돌린다.
두 손으로 상태의 얼굴을 잡고 상처를 확인한다. 이마에 깊게 파인 벌어진 틈 사이로 빨간 피가 가득 고여있다.
“어서 병원에 가자”
상태의 손을 잡고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신고를 마치고 오락실로 온 남편이 들어온다.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를 보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상태야”
“학교랑 경찰서에 연락해요. 상태 찾았다고. 저는 상태 데리고 병원에 갈게요.”
“그래.”
병원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가 여기저기 망가진 상태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코와 눈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상태야, 엄마랑 조용한 시골에 가서 살까?”
상태가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예전에 나의 애정을 필요로 하는 눈동자가 아닌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가 된 상태의 눈을 한참을 바라본다.

가슴이 아린다.

‘엄마는 널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어. 엄마도 겁이 나지만 그래도 도망치지 않을 거야. 우리 아들 엄마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엄마 옆에만 있어 줘. 알았지?’



다음 날 아침, 남편이 말했다.

“시골로 내려가자.”
“그래요, 우리 같이 내려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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