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유승주
“아이가 갑자기 그럴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아니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의 차분한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가 며칠 전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다녀왔었습니다.”
“아…그랬군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기사님,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괜찮으시다면 수리비만 받고 마무리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 네. 머 그래야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수리비는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남편이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수리비 나오는 대로 청구하시는 걸로 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병원에 상황을 설명하니 검사를 받아볼 수 있도록 다른 과에 접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진료실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상태는 여전히 멍하다.
“상태야,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정말로?”
“응.”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우리 상태 많이 잘못된 거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을 아무리 다잡으려고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상태 환자분”
“네”
상태를 부르는 소리에 갑자기 긴장되었다.
“들어가세요”
“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진료실로 들어가자 50대로 보이는 점잖은 분위기의 안경을 낀 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앉으세요.”
상태와 내가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의자에 앉았고 남편은 뒤에 섰다.
“몇 가지 검사를 받아 본 결과 상태 군이 연탄가스중독으로 감각장애와 인지장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뭐 지요, 선생님?”
“뇌 신경의 손상으로 장애가 생긴 것이지요.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가벼운 접촉, 통증, 온도, 심하면 자기 신체 일부가 어딨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를 무감각증이라고 합니다. 상태 군은 그중에서도 얼굴 감각의 장애로 보입니다. 얼굴에서 느끼는 감각이 상실된 것이지요. 그리고 인지장애도 있어 보입니다. 집중력 감소, 기억 손상, 충동성과 의사소통 장애 등이지요. 상태 군이 택시에 뛰어든 것도 충동성에 의해 보인 행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상태 군 집중력이 감소하고 기억력이 떨어져 학업에도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너무 놀라 말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치료는 가능합니까?”
“현재로서는 통증 장애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행동장애는 우선하여 약물치료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우선 약물치료를 하시면서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금 더 지켜보며 어떻게 치료할지를 결정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약을 드릴 테니 잘 챙겨 먹이십시오. 그리고 상태 군을 잘 지켜봐 주십시오.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다음에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네.”
아…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상태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우리 가족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병원을 나왔다. 머릿속이 하얘진 나와 멍해진 상태 그리고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남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빵빵’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상태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흘렀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잠시 내 얼굴에 감각이 없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느낌인 걸까? 눈을 깜박이는 느낌, 내가 지금 느끼는 눈물이 흐르는 느낌도 상태는 느낄 수가 없게 되는 걸까? 눈물을 닦고 상태를 쳐다보았다.
상태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 손에 담긴 따스함도 이젠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눈에서 계속해서 눈물이 흐른다. 다시 고개를 돌린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차리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붕대를 감은 상태는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식사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는 상태를 재웠다. 집에 온 후로 아무 말도 없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물었다.
“여보, 우리 아들 이제 어떻게 해요.”
“어쩔 수 없지. 지켜보는 수밖에.”
“그날 나는 왜 배달을 나가서…흑흑”
“그런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당신은 말을 해도 늘 그런 식이지요. 어떻게 사람이 필요한 말만 하고 산데요? 속상해서 하는 말에 위로는 못 해줄망정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당신만 속상해? 나도 속상해.”
“그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요.”
“내가 뭘 어쨌다고!”
“나 혼자만 난리고 자기는 침착하고 당신은 늘 내가 맘에 안 들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늘 자기 눈치 보고 사느라 숨이 막혀요.”
“내가 무슨 눈치를 줬다고!”
“당신이 맨날 집 안 구석구석 내가 해놓은 모든 것들을 맘에 안 든다는 듯 훓고 인상 쓰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내가 또 언제 그랬다고!”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내가 다 느꼈지만 나도 참고 넘어간 거라고요.”
“됐고, 그만해! 시끄럽게”
“머가 시끄러워요! 사람이 소리를 내고 살아야지. 여기가 무슨 절간도 아니고 왜 맨날 조용해야 하는데요?”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보던 남편 얼굴이 일그러지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소리친다.
“난 시끄러운 게 싫어! 시끄러운 게 너무 싫다고!”
“그럼 조용히 산속에서 혼자 살지 뭐 하러 나랑 결혼은 했어요?”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서러움이 몰려왔다. 내 눈물을 보자 남편이 인상을 쓴다.
“시끄러워, 그만해!”
“하여튼 자기 할 말만 하고 내 말은 시끄러운 거지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철썩. 바닥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잠이나 자야지. 남편과 이렇게 큰 소리로 싸운 건 처음이다. 떨리는 가슴과 손을 이불로 감싸고 눈을 질끈 감는다.
눈물이 오른쪽 눈을 타고 내려가 베개로 떨어졌다.
‘탁‘ 남편이 문이 부서질 듯 세게 닫고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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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