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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 이야기/무색무취

무색무취 5화

by 머지볼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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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승주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건넨다. 어젯밤 먹고 싶다고 해서 사 왔는데 시큰둥하게 요구르트를 받아서는 쪽쪽 빨아먹는다.
“상태야, 엄마 학교에 전화하고 올게.”
선생님께 지난밤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상태가 퇴원하는 대로 등교시키겠다고 말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오셨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보시고 맨 마지막으로 상태를 보러 오셨다.
“환자분, 좀 어때요?”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도 잘 먹고 괜찮아 보여요.”
“그래요, 특별히 불편하거나 한 것도 없고요?”
“네, 아직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긴 해요.”
“수액을 조금 더 맞고 오후까지 좀 지켜보도록 할게요.”
“네,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가시고 상태와 같이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병실 밖 복도를 걸어 다녔다.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들이 뒤섞여 복잡하면서도 조용한 여기저기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걷다 보니 비어있는 복도 의자가 보여 상태를 앉히고 나도 옆에 앉았다. 상태의 손을 꼭 잡고 상태를 쳐다봤다.
“상태야, 엄마가 미안해.”
“응?”
“엄마가 상태 두고 혼자 나가서 우리 상태 큰일 날 뻔했잖아. 이제는 엄마가 상태 혼자 두고 어디 안 나갈게. 미안해.”
“응”
복도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잠시 뒤 점심 식사를 실은 카트가 복도로 들어왔다.
“점심 나오나 보다. 들어가자.”
“응”
상태는 나온 점심밥을 다 먹고는 졸린 듯 멍해 보인다.
“나 졸려.”
“어, 그래. 어서 자.”
상태가 잠든 사이 잠시 밖에 나가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었다. 다 먹고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매일 집과 세탁소에만 있다가 비록 병원이지만 사람 많은 곳에 오니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상태가 일어났을 것 같아 다시 병실로 들어간다. 잠에서 깬 상태는 침대에 앉아 링거가 꼽힌 손을 가지런히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상태 일어났어?”
“응.”
“화장실 가고 싶어?”
“응.”
“잠깐만.”
링거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 상태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게 부축해 주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상태를 눕히고 상태의 몸을 주물러 주었다.
“상태야. 가만히 있으니 답답하지?”
“응”
“집에 가고 싶어?”
“응, 집에 가고 싶어.”
“그래. 이따가 선생님 오시면 집에 가도 되는지 물어보자.”
상태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뒤 선생님이 오셨다.  
“환자분. 좀 어떤가요?”
“괜찮은 것 같아요. 잠도 푹 잤고 밥도 잘 먹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병실에 있는 게 힘든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퇴원해도 될까요? 집에 가서 일도 해야 해서요.”
“며칠 더 지켜보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집에 가셔도 될 거 같네요.”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병원비를 내고 와서 병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남편이 왔다.
“퇴원해도 된대요. 집에 가요”
“그래. 다행이네”
상태의 손을 꼭 잡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온 상태는 잠시 서서 길거리를 쳐다보았다. 
“밖에 나오니까 좋지?”
상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어서 집에 가자.” 
상태의 손을 꼭 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어딘지 모르게 새롭다. 상태도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인지 내 손을 꼭 잡고 집에 가는 내내 창밖으로 열심히 쳐다보면서 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너무나 익숙한 길인데 오늘따라 새롭고 더 활기차게 느껴진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쁜 동네였나? 기분 좋은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세탁소로 들어가 익숙한 냄새를 맡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에 오자마자 상태가 좋아하는 달걀옷을 입힌 소시지를 구워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상태가 무사히 돌아와 다 같이 먹는 저녁 식사 시간이 참 평화롭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다시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밥을 차리고 학교를 보내고 장을 보고 세탁소 일하고 또다시 밥을 차리는 반복적인 일상이다. 이제 배달은 남편 혼자 다닌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상태는 말 수가 더 줄었고, 계속 멍한 모습을 보였다.
어느 날 수선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저는 관악 경찰서 김무정 경관입니다. 이상태군 집 맞나요?”
“네. 그런데요.”
“지금 여기 은천 병원입니다. 상태군이 택시를 들이받아서 병원에 와 있습니다.”
“네에??”
너무 놀라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지금 바로 은천 병원으로 오실 수 있을까요?”
“아네, 지금 바로 갈게요.”
“무슨 전화야?”
“여보, 상태가…택시를 들이받았데요.”
“택시를 들이받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어요. 빨리 가봐요.”
남편과 서둘러 집을 나와 병원으로 출발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교통사고가 났다는 건가? 걱정되어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서둘러 뛰어가 병원에 가보니 상태가 얼굴에 붕대를 두르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다.
“상태야!”
“상태 군 보호자 되십니까?”
“네.”
“상태 군이 갑자기 택시 앞으로 달려오더니 머리를 피가 날 때까지 박았다고 하네요.”
“네에?? ”
“우선 응급처치는 했습니다.”
그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끼어드셨다.
“아니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아니 왜 애가 갑자기 튀어나와 머리를 박는답니까?”
“상태야, 괜찮아? 왜 그랬어, 상태야”
상태가 아무 말이 없다.
“상태야, 왜 그랬어? 상태가 진짜로 택시로 달려가서 머리를 박은 거야? 피가 나도록?”
“응, 근데 나 하나도 안 아파.”
“그게 무슨 소리야, 피가 이렇게 났는데.”
“하나도 안 아파, 그래서 계속 박아봤어.”
눈을 크게 뜨고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도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

.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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